황금빛 너도밤나무가 죽어 가는 잎을 떨군다,
마치 떨구는 일이 안도라도 되는 듯이.
스러지는 숲이 바스락대며 숨을 몰아쉬고,
슬픔 속에 눈부신 융단 하나를 깔아 놓는다.
나는 호박빛 숲 바닥을 헤치고 걸으며
끝내 붙들지 못한 것들을 생각한다.
기울어진 나무들이 걸치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제 황금을 기꺼이 건네준다.
❤️ 140 좋아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끼
이끼는 돌 위에 제 인내를 펼쳐 놓는다,
한기 속에 쓰인 말 없는 경전처럼.
아무것도 청하지 않고 홀로 번성하며,
바위 표면 위에서 고요하고 잔잔하다.
나는 그것이 서리 속에 천천히 자라는 걸 본다,
오래된 바위에 매인 조용한 생명을.
기어드는 세월이 세상에 골몰하기 전부터
그것은 서두르는 시계 바깥에서 사는 법을 익혔다.
"그냥… 이끼요. 돌 위에 말 없는 경전을 쓴다니. 이번 주 내내 이 생각만 할 것 같아요."
강어귀
휩쓸려 온 강들이 제 길잡이를 잃고,
짠 바다가 달려온 물줄기를 맞이하는 곳에서,
나는 조수의 진창 가장자리를 걷는다,
부서진 꿈의 조각을 주우려고.
밧줄 한 토막, 쪼개진 나무 들보,
물은 제 보물들을 모래 위에 갈라놓는다.
나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물가에 서서
뭍에 버려진 것들을 살핀다.
두 기슭 사이에 조용한 평화가 내려앉는다,
짠맛과 단맛 사이 그 중간 자리에.
바로 여기서 바다는 제 문을 열고
내 발치에 부드러운 디딜 곳을 남긴다.
삼백 년 전에 하늘에 닿았던
느릿하게 흔들리는 소나무 아래 서 보는 일은,
자리와 조용한 여백만 주어진다면
사람의 한 생도 괜찮다는 걸 느끼는 일이다.
그 나무는 그저 서서 비를 마셨을 뿐.
나는 떨리는 손을 그 껍질에 얹고,
아픔을 지나 살아 있는 닻 하나를 느낀다,
향기로운 어둠 속으로 깊이 뻗은 닻을.
❤️ 190 좋아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현장 조사
나는 늪의 진창 언저리를 오가며
갈대가 내는 바스락거림을 하나하나 적는다.
무거운 물이 하늘의 소굴을 비추고,
오래된 물길이 이끄는 대로 흘러간다.
이 단순한 일이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일상이 지워 버린 그 인내를 되돌려 준다.
늪은 인간의 시계보다 오래 남는다,
우리의 절박하고 텅 빈 조급함에 아랑곳없이.
해가 지면 나는 수첩을 접는다.
왜가리 한 마리가 스러지는 푸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는 도시의 조바심을 벗어 놓고,
고독이 참된 자리를 하나 찾는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