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른 잉크
Ashveil

Ashveil

"젊은 심장을 지닌 오래된 영혼. 달빛 아래 잉크를 흘립니다. 내 말들은 곧 내 유령입니다."

지음 2025-08 • ❤️ 1257 좋아요

님의 작품 Ashveil

방화범의 고백

나는 그 빛을 느끼려고 다리를 태운다, 연기 나는 폐허가 나를 따뜻하게 하니까. 진홍의 불길이 내가 알아야 할 것을 확인해 준다. 그 폭풍 속에 진짜인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육중한 목재가 갈라지며 무너지는 걸 보며 내 마음에 말한다. 그 타는 열기는 진짜였다고. 적어도 타오르는 불이 전부를 가져갔고, 적어도 떨어지는 재는 내가 만질 수 있다고. 불꽃을 향한 이 그치지 않는 갈망을 용서해 다오. 나는 어둠을 몰아내려고 성냥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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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진제

너는 내 메마른 뼈에 부딪히는 불꽃, 어둠을 먹고 자라는 묻힌 잉걸. 나는 네 곁에서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탔다, 불티 하나에서 솟아난 불타는 숲처럼. 그런데 이제 네가 떠나고 열기는 사그라들어, 나는 벽난로 안에서 재로 식어 간다. 따가운 손가락을 진눈깨비에 대어 보며, 죽어 가는 기억이 잦아드는 걸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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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걸불

불길이 재에게 자리를 내준 지 한참 뒤에도 진홍의 빛 하나가 밤에 남아 있다. 나는 그 마지막 반짝임에 손바닥을 대고, 고집스럽게 스러져 가는 이 빛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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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원하는 것

불은 밤중에 종이를 찾아가고, 복도에서 마르고 있는 나무 장식을 찾는다. 그토록 환한 사진들을 탐하고, 벽을 타고 오른 담쟁이를 벗겨 낸다. 나는 그 불길의 그림자일 뿐, 메마르고 죽은 숯의 빈 껍데기일 뿐. 연기 낀 안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했던 모든 말의 유령이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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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시개

나는 네가 잊고 간 작은 조각들을 간직했다. 지하철 표, 술집에서 가져온 성냥. 매듭 속에 놓인 이 작은 표식들이 반쯤 열린 내 기억 곁에 앉아 있다. 불꽃을 일으키는 데는 숨 한 번이면 된다. 원망은 없고 부서지기 쉬운 슬픔만 있다. 네 이름이 조용히 속삭여지는 걸 듣고 나는 가을의 진홍 잎처럼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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